티스토리 툴바


 

 

학창 시절 성교육 시간마다 그게 참 궁금했다. 왜 자지 보지라는 그 심플하고도 간결한 우리 고유의 말을 놔두고 신체의 일부를 성기, 음부, 페니스, 버자이너 같은 외래어로 순환해야만 하는지, 또한 수많은 말의 병기고에서 왜 유독 자지와 보지만큼은 가장 저급한 무기를 쓰는 것으로 여겨져 왔는지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그랬다. 주변인들이 나를 지칭할 때 자주 표현하는 말이 있다.

 

 

“남들 앞에 싸 보일까, 가벼워 보일까, 얕잡아 보일까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누가 자길 욕하든, 손가락질 하던, 타인의 시선 따위에 개의치 않는 사람”

 

“어느 자리에서든, 어떤 사람과의 만남에서든, 상대의 나이나 사회적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쑥스러워 하지도, 어색해 하지도 않는, 그렇다 해서 자만도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의 애티튜드를 드러내며 사는 사람”

 

 

그런 나조차도 지난 칼럼에서 남성의 ‘자지’를 ‘페니스’란 단어로 순화해서 사용했다. 이는 전혀 경건하게 보여야 한다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무의식중에 단어의 순환이 따랐다는 것이, 지금 돌이켜 보면 나를 의아하고 짜증나게 한다.

 

해서, 이번 시간엔 마치 체제의 반항을 자기 고유의 가치로만 인식하려 드는 사춘기 소년마냥 언어순환 배제하며 38선 넘어 자지 보지의 통일을 이룩하고자 한다. 그 이름하야 위대한 자지보지 세계화, 자지와 보지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시각이요. 자지 보지의 ‘코스모 폴리탄’이라.

 

 

 

 

 

캐나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다이앤 스켐펠런‘은 <헌신의 형상>에서 여성의 보지를 가리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곳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소동이 집중되는 부위이다.”

 

 

아메바 같은 무성생물과 달리, 유성동물은 생식을 위한 도구 없이는 번식을 할 수 없다. 이 보지는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구멍에 끼워 넣기 방식으로 종족의 번식과 진화를 담당해 왔음에도, 이 단어를 거부하는 여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입 밖에 내기 불결히 여기는 것은 왜란 말인가. 우리를 입 다물게 하는 이 수치심은 무엇 때문인가.

 

보지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삶의 일부가 되어 온 고귀한 신체이자, 약 10센티미터 길이의 관으로 이루어진 여성의 근육기관이다. 영단어 '버자이너'는 라틴어로 칼집을 의미한다. 내가 경험하고 관찰해 온 보지의 내부조직은 입의 점막과 비슷한데, 입과 마찬가지로 그 내부는 박테리아가 건강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의학서적들을 찾아보니 보지의 박테리아는 야구루트에서 찾을 수 있는 유산균이며, 이런 생태학적 균형을 깨뜨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보지를 매일 마다 물로 씻어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이로운 박테리아는 파괴되고 덜 우호적인 유기물의 성장은 촉진되기 때문이라. 우리네 수컷들의 따뜻하고 축축한 자지처럼 보지의 습한 환경도 성병이나 다른 종류의 전염병이 배양되는 이상적인 부화기 역할을 한다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건강한 보지는 언제나 스스로 균형을 찾는다는 게 나를 신기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남자의 자지는 손가락처럼 단순하고 심플하지만, 여성의 보지는 여성 자신에게조차 신비롭고, 비밀스럽고, 끈적끈적 하고 습하다. 한 달에 한 번은 피를 흘린다. 분비액으로 종종 더렵혀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보지는 자기만의 비밀과 위험한 삶을,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여자를 만날 때마다 난 그게 궁금하다. 그녀의 보지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가 말이다. 아름답고 위험한 그녀만의 보지가 간직한 그 은밀한 시크릿이.

 

 

 

 

그 진귀한 보지의 탐사와 관련하여 ‘보지 생태학’에서 - 그런 학문이 있는지 따지지 마라. 그냥 내가 있다면 있는 거다 - 가장 흥미를 돋우는 것은 신체에 보지가 자리한 각도와 그 입구의 위치이다. 보지 주위를 관찰하면 음핵 아래에 요도의 입구가 있다. 요도의 위치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은 별 탈 없이 소변을 보기 위해 걸터앉거나 쪼그려 앉을 수 있다.

 

어떤 꼴마초 수컷들은 서서 소변보는 능력을 우월의 상징으로 끌어올리려 애쓰는데, 그러한 상징성에 동참을 하는 여성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 미국의 보수 작가인 ‘카밀 패글리아’다. 그녀는 “남성의 방뇨는 실로 우월한 호를 그리는 일종의 성취다.”라고 말하면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여자는 단지 자신이 서 있는 땅을 적실뿐이다. 다리를 들어 올려 자신의 무례한 흔적을 남기는 수캐는 그 구역의 모든 덤불에 표시를 하는 낙서 예술가다. 반면 여자들은 암캐들처럼 땅에 쪼그려 앉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게 미국의 보수주의 여성 작가가 한 말인데, 소변보는 방법으로 젠더의 상징적 우월의 순위를 매기는 ‘패글리아’의 자세는 신체의 모든 자연스런 기능에 우생학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자기 뇌의 열등함을 반증하는 셈이었다.

 

그녀 뇌의 열등함은 그녀에게 맡기고 우리는 다시 진도 나가자. 무식할 권리는 그녀에게 있는 거니까. 필자는 지금도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보지를 마주했을 때의 기억, 잊을 수가 없다. 2003년 그 어두운 장미 모텔, 겉에서 볼 때 그녀의 보지가 가진 가장 도드라진 부위는 음부의 언덕이나 비너스의 언덕을 뜻하는 ‘몬스 퓨비스’ 혹은 ‘몬스 베네리스’였는데, 털로 장식된 이 부위는 치골을 감싸며 나를 딱딱해 지게 했다.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한 순간, 그저 스르렁 미끄덩 들어가는 순간 깨달았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남성은 ‘딱딱해’지지만 여성은 ‘젖는다.’라는 상반된 말의 의미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성에 대해 나름 깨어있던 그녀조차 자신의 보지를 그 어떤 말로도 스스로 이야기 하지 않았었다. 그저 “나 오늘은 거기가 안 좋아서 안 해” 같은, 그러니까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보지’를 ‘거기’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은 그녀만이 아닌 이후 내가 만난 모든 여성들이 그러했다.

 

하긴 ‘보부아르’ 같은 유명한 페미니스트조차 여성의 성기를 논할 때 갖는 상반된 감정은 유감스럽지만 우리 사회에서 오래 지속되어야 할 전통이라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보지’를 말하지 마라. 보지를 침묵하라. 이게 우리 사회의 전통이라고, 페미니스트들조차도 그리 주장했다는 거라.

 

미국의 언론인이자 페미니스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그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쓰면서 교육받고 개화된 어머니조차 (그녀의 어머니도 유명한 페미니스트) 여성의 보지와 관련된 이름들을 은어뿐 아니라 어떠한 말로도 입에 담지 못하게 했다며 다음과 같이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과 글을 배울 때든 내 몸을 돌보는 법을 배울 때든 몸의 놀라운 부분들에 대해 다른 명칭들만 듣고 자랐다. 나중에는 애인이건 의사건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여자의 몸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통속적인 믿음에 무방비로 놓이게 되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미국의 극작가 ‘이브 엔슬러’가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쓸 때 싸운 것이 바로 이 침묵의 공포였다. 1996년 작가 자신이 직접 출연하여 초연된 이후로 이 작품은 40 여개 이상의 나라에서 수천 번이나 공연되었고 그만큼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지금도 이름난 여배우들이 자진하여 몰려들고 있고, 수익의 대부분은 지역여성 쉼터로 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배우 김여진이 임신한 상태에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연극은 '이브 엔슬러'가 200명이 넘는 여성들을 직접 인터뷰 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사실은 그녀가 한 친구와 나눈 폐경에 대한 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친구가 자신의 보지에 대해서 얼마나 끔찍한 증오와 경멸, 혐오감을 갖고 얘기하는지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여성들에게 보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모두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불편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못 견디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시작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 인터뷰에 응한 200여 명의 여성들은 보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양지의 담론으로 꺼내놓기 시작한다.

 

어떤 여성은 자신의 보지 털과 출산의 신비에 대해 열광적으로 이야기하며 만약 여성의 보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할지, 옷을 입을 수 있다면 어떤 옷을 입을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극의 대단원에서 ‘이브 엔슬러’는 수많은 여성관객들에게 모두 일어서 보라고 말한다.

 

“내가 이 말을 쓰는 건”이라며 엔슬러는 자신의 극에서 ‘보지’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인정할 수 없고 기억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말하지 않는 것은 비밀이 되어 버리고, 그러한 비밀들은 종종 수치와 두려움과 신화를 낳습니다. 내가 이 말을 쓰는 건 이보다 더 포괄적인, 전체와 모든 부위를 진실로 더 잘 묘사하는 단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보지에 대해 우리가 가진 생각을 걱정했고, 보지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것을 더 많이 걱정했습니다. 나 자신의 보지도 걱정했습니다. 나의 보지는 다른 보지들과의 관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허나, 90년대 이 파격적인 연극이 지속되는 동안 ‘엔슬러’는 인류의 절반이 가지고 있는 여성의 신체부위를 큰 소리로 명명하는 것에 대한 격렬한 반대에 부닥쳤다. 종종 신문이나 라디오 광고 책임자들, 심지어는 연극이 상영되는 극장의 자동응답기와 간판 책임자들조차 ‘엔슬러’의 제목을 검열하여 ‘V모놀로그’나 그냥 ‘모놀로그’로 제목을 순화했다.

 

그러나 이 소심한 머리글자 사용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것은 연극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었다. 언론재벌인 엔터콤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고장의 순수함과 도덕을 지키지 위해서”라는 이유로 라디오 방송국에 이 연극의 광고를 금지시켰다.

 

지역 사회의 교회들 역시도 이 연극을 상스럽고 불결한 포르노 가면무도회라 비난했고 이와 같은 저질문화가 우리 사회가 치닫고 있는 퇴폐와 타락에 실질적으로 큰 기여를 해왔다며 ‘도덕적이지 않다.’고 비난했다. 텍사스 젊은 보수주의자 모임은 이 작품이 저속하고, 외설적이며,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쓰레기이자 좌익의 선전물이란 주장으로 보이콧 선언에 참여한다.

 

‘보지’란 단어 하나를 말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현실을 논하는 것에 이런 난리법석이라니. 그러나 수많은 반대에 부닥치면서도 엔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욱 많은 여성들이 이 말을 해야 이것을 말하는 것이 큰 사건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 이 말이 우리 언어의 일부, 나아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밀이 됩니다.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가 되기 쉽습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죄스러운 일이라고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입 밖에 내어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보지의 독백>이란 연극과 원작은 모두 여성의 생식기를 소리 내어 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여성의 생식기는 여전히 금기시, 터부시 되어 누구도 그리고 여성이라면 더욱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이브 엔슬러’는 극장에서, 대학에서, 거실에서, 저녁파티에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라디오 방송에서 ‘보지’를 소리 내어 말하고 다녔다. 공연을 하는 날에는 하루 저녁에 128번씩 큰소리로 말했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여성 생식기를 입 밖으로 내어 말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두려운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맨 처음 당신은 그 말을 할 때 당신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을 단번에 뚫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가질 것 입니다. ‘보지’ 당신은 마치 누군가 당신을 후려칠 것 같은 죄책감과 함께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허나, 이쯤에서 난 한 가지 의아함을 느꼈다. 사회의 ‘핑크 콤플렉스’를 조금씩 무너뜨리는 방식은 다양할 지언데, 왜 그렇게 ‘보지’란 단어에 집착할까, 그 방법만 있는 건 아닐 텐데. 해서 내 생각은 그렇다. 그녀는 ‘보지’란 단어에서 오는, 그것도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신체부위에서 느끼는 죄책감과 수치심 같은 감정을 극복하는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오직 수백 번 혹은 수천 번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자신의 말이 되고 자기 몸의 한 부분으로 자각되고 ‘보지’가 여성에게 얼마나 핵심적인 부분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기 바라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와 관객들 사이의 일화가 기억난다.

 

자신이 성적인 쾌감을 언제 느꼈는지 기억조차 못하는 나이든 여성 9명에게 손거울에 자신의 보지를 비춰보면서 클리토리스가 어디 있는지 집에 돌아가 각자 짚어보라고 하자 훗날 그녀들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순간 나는 따뜻하게 온기가 돌았고, 심장이 힘차게 박동하면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며 젊어진 것을 느꼈어. 갑자기 내 자신과 일치하는 어떤 곳에 손가락이 닿았어. 처음에는 나를 거기 계속 잡아두게 만드는 약간의 떨림이 있었지.

 

그리고 그 떨림은 지진으로, 수천 수 만개로 갈라지는 겹겹의 폭발로 이어졌어. 그 지진은 빛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나를 안내했어. 음악과 무지개 빛깔과 순수와 열망으로 가득 찬 새로운 세상을 나에게 열어주었지. 난 그 새로운 세상과 내가 결합된 것을 느꼈어.“

 

 

 

많은 여성들이 성적인 쾌감을 수치로 여겨왔다. 또한 어린 시절 잘못된 교육으로 ‘보지’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다보니 많은 여성들이 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죄책감을 갖게 될 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를 못하고, 단 한 번도 보거나 만져보지도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이리라.

 

 

 

 

 

그래, 오늘도 난, 세상의 보지와 자지들이 일치단결하여, 만국의 자지 보지가 궐기하는 아름답고 섹시한 세상을 꿈꾸며, 이 글을 쓴다. 자지를 자지라 부르고, 보지를 보지라 부르는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윤동주 시인의 마음으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세상의 자지와 보지는 아름다웠노라 외치는 천상병 시인의 마음으로 말이다.

 

자지와 보지의 ‘포스트 모더니즘’이요. 자지 보지의 ‘코스모 폴리탄’을 꿈꾸는 새벽이로구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젖은낙엽>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2/06/05 09:27

    뭘로 한대 맞은 기분입니다.
    제 남친은 자지(금방 배웠음)를 허리하학으로 표현하더군요.
    남친과 꼭 한번 하고 싶은데 먼저 알세개씨의 마눌의 성에 대한 독점적 지위부터 해제시켜드려야겠네요.
    될까몰라.

    • 2012/06/05 13:12

      그건 힘들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 무슨소리지...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2/06/24 00:15

      남친이라니...? 그 말은 님은 지금 외도를 저지르고 있다는 말인가요?
      사실이라면 흉하네요...
      남편분은 자기 아내가 자신을 배신하고 딴남자랑 쓸데없는 일을 꾸미려는줄도 모르고 있을텐데 심히 안타깝군요.
      왜 요즘은 남녀를 불문하고 서로를 배신하며 파국을 만들지 못해 안달인지 참 슬퍼집니다.
      충신불사이군이란 말은 남녀관계 특히 부부관계에서 똑같이 적용되는 말일진대 이런현실은 너무나 슬프군요.
      싱글도 아닌 기혼자가 서로에 대한 신의와 충성심이 없다면 그게 인간인가요?
      꼰대같이 들릴지는 몰라도 그래도 지켜야할 인간의 선이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글을 남기니 다른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이래서 요즘에는 부부사이에도 서로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는 세태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되었다고 하는군요.
      참으로 씁쓸한 현실입니다.

  2. 2012/06/07 09:50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고 얼마후에 조심스레 말을 했었지
    "너의 그곳을 보지라 부르고 싶어, 괜찮겠어?"라고.
    여자친구는 허락했고, 5년여가 지난 지금도 우리는
    "보지"라는 말을 사랑스럽게 발음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음ㅎㅎ

  3. 2012/06/15 11:29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실 대부분 동감하는 내용이고 버자이너 모놀로그 연극도 봤고...
    우리 시선이 아직 숨겨야 한다고 말하는 듯 한 느낌을 지우긴 힘드네요.
    특히 여성 스스로가 더욱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주위 여친이나 기타 여성들을 보아도
    우리 대한민국은 여성이 먼저 범위를 제한 하는 것 같아요.

    • 2012/06/15 20:14

      여성들이 스스로의 바운더리를 제한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싸게 보지 않을까", "가벼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여자들도 사실 같은 동성 친구들과 모일 때는 성적 담론을 일상적으로 이야기 하는데 어려움이 없거든요. 양지에서 여성들의 성적담론을 싼 여자로 보는 왜곡된 시선도 우리가 조금은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이전버튼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57 이전버튼